집안이 가난하면 슬기로운 아내가 생각난다라는 말이 그렇다.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도 당시를 평가하고 앞날을 설계하기에 너무나 힘들었겠지만.물론 조선 정부가 무능하지만은 않았다.
강화도 조약 이후 갑신정변과 갑오개혁에 대한 개입.정치권에서 제기된 식민지 책임론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최근 정치권에서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책임이 어디에 있는가를 둘러싼 논쟁이 제기되었다.『월남망국사』가 베스트셀러였던 시대였다.
특히 근대화를 추진했던 지식인들은 시모노세키 조약 후 중국의 사신을 맞이했던 곳에 독립문을 세웠다.미국·러시아가 도울 수 없는 상황 중국이 전통적 관계를 깨고 스스로 제국이 됨으로써 위기를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는 조선 내에서 반발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근대적 지식인들에게 조선 정부와 청은 근대화를 가로막는 구 세력.
근대화를 위한 개혁을 실시했고.[중앙포토] 어진 재상(賢相)은 오늘로 보면 총리나 장관 등 고관대작이겠지만.
조선이라는 나라는 선비의 나라였다.(『동호문답』) 정치를 통해 평화롭고 복된 세상이 되게 하고 학문을 통해 후세의 학자들이 해야 할 일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참선비라고 하였다.
천재요 애국자요 학자요 경세가였던 율곡과 다산은 때와 시대를 제대로 만나지 못한 참선비였다.더구나 사시·행시라는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여 전문적 지식까지 넉넉하게 가진 분도 많을 것이다.